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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상에게 드림
    My Scrapbook 2013. 6. 15. 17:34

    장안(長安)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썩어 버렸네

    능가경은 책상머리에 쌓아 두고
    초사도 손에서 놓지 못하네
    곤궁하고 못난 인생
    해 질 녘이면 애오라지 술잔만 기울이네

    지금 길이 이미 막혔는데
    백발까지 기다려 본들 무엇하리
    쓸쓸하구나, 진상이여!
    베옷 입고 김매며 제사의 예를 익히고
    오묘한 요순의 글을 배웠거늘
    사람들은 낡은 문장이라 나무라네

    사립문엔 수레바퀴 자국 얼어붙어 있고
    해 기울면 느릅나무 그림자만 앙상한데
    이 황혼에 그대가 날 찾아왔으니
    곧은 절개 지키려다 젊음이 주름지겠네

    오천 길 태화산처럼
    땅을 가르고 우뚝 솟은 그대
    주변에 겨눌 만한 것 하나 없이
    단번에 치솟아 견우성과 북두칠성을 찌르거늘
    벼슬아치들이 그대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어찌 내 입까지 막을 수 있으랴
    나도 태화산 같은 그대를 본받아
    책상다리 하고 앉아 한낮을 바라보네

    서리 맞으면 잡목 되고 말지만
    때를 만나면 봄버들 되는 것을
    예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가고
    초췌하기가 비루먹은 개와 같네

    눈보라 치는 재단을 지키면서
    검은 끈에 관인을 차고 있다 하나
    노비 같은 기색과 태도로
    다만 먼지 털고 비질만 할 뿐이네

    하늘의 눈은 언제 열려
    옛 검 한번 크게 울어 볼 것인가


    - 이하(李賀) [진상에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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