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어둠 속에서
    My Scrapbook 2013. 7. 22. 16:12

    어두운 세상에
    부질없는 이름이
    반딧불같이 반짝이는 게 싫다.

    불을 켜야 한다.
    내가 숨어서 살기 위해서라도
    불은 켜져야 한다.

    찬란한 빛 속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느냐.
    아니면 빛이 묻은 칼로라도 나를 짓이겨다오.

    불을 켜도 도무지 밝지를 않다.
    안개가 자욱한 탓인지......
    화투불을 놓아도 횃불을 들어도
    먼 곳에서는 한점 호롱불이다.

    저마다 가슴이 터져 목숨을 태우고 있건만
    종소리처럼 울려 갈 수 없는 빛이 서럽구나.

    닭이 울면 새벽이 온다는데
    무슨 놈의 닭은
    초저녁부터 울어도 밤은 길기만 하고ㅡ

    天地(천지)가 무너질 듯 소름끼치는
    百鬼夜行(백귀야행)의 어둠의 거리를
    개도 짖지 않는다.

    明白(명백)한 일이 하나도 없으면
    땅이 도는 게 아니라 하늘이 도는 게지.
    죽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달래어
    죽기 싫은 마음이 미칠 것 같다.

    어둠을 따라 행길로 나선다.
    어둠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찢어진 풀벌레같이 떨고 있다.

    가냘픈 손가락을 券銃(권총)처럼 心腸(심장)에 겨누고
    가난한 피를 조금씩 흘리면서 나는 가야 한다.
    내가 나의 빛이 되어서......



    - 조지훈 [어둠 속에서] 




    'My Scrap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 많으면 따르고 돈 없으면 피하고  (0) 2013.10.01
    삶의 기쁨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해도...  (0) 2013.09.08
    소년  (0) 2013.07.21
    부재  (0) 2013.07.11
    신수작자경(愼酬酢自警)  (0) 2013.07.0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