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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분간
    My Scrapbook 2012. 2. 17. 23:22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휘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박이가 뛰어내려 안기는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生,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 나희덕 [오분간]


    ===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 나희덕 [빗방울,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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