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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 풍속도첩
    My Story of Arts 2008. 2. 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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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보물 제527호인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한번씩은 교과서에서 다 보았겠죠. 풍속도첩이면 풍속도첩이지 왜 단원이 붙었냐? 김홍도의 호가 단원(檀園)이죠 옛날에는 단원풍속도첩이 하나의 제목인줄 알았던 그래서 그냥 그렇게 외었던 나... 책에 '호'에대한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왜 호라는 생각은 못하고 분리해서 그냥 무조건 외웠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그냥 주입식 교육이라고 변명해 버릴까요? 

    그의 풍속화에서 조선후기 서민 사회의 모습을 다루기 때문일까요 김홍도의 그림들은 서양의 그림에서는 전혀 볼 수없는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해학과 정이라는것이 느껴지게 만드는 그림들입니다.

    조선 후기의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서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생업의 이모저모를 간략하면서도 한국적 해학과 정감이 넘쳐흐르도록 그림에 담았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들고 무엇보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면 군상 속의 각 개인 하나하나의 표정과 몸짓 또한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더욱 재미있는건 틀린 그림찾기의 묘미가 있다는 겁니다 오~ 놀라워라! 이미 그 옛날에 단원 김홍도는 틀린 그림찾기의 재미 또한 알고 계셔서 이렇게 서비스로 제공하셨다니! 시대를 앞서가는 분입니다 ^_^ b

    8번째 그림인 <씨름>을 보면 오른쪽 모서리에 오른 팔을 뒤로 높고 씨름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그런데 오르팔에 왼팔이 붙어있죠.

    옛날에는 김홍도의 그림에서 여백의 구조, 구심적 구조를 배웠던건 다 잊어먹었지만 가만히 보고있으면 구경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이라는 점이 참 인상깊고 웬일이지 제가 다 기분이 좋더군요. 전문가들이나 여러 평들을 써놓은 웹사이트를 가보면 김홍도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산수, 초상화 등 뛰어나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그 중에서도 산수화가 백미라는데 저만해도 아직까지 김홍도하면 풍속화만 생각해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김홍도에대한 글을 올리게된건 오늘 우연히 알게된 흥미로운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벌써 몇년전 일인데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의 전시회에 가본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흥미롭고 인상적인 전시회였고 거기서 만나본 많은 외국인들의 샤라쿠에대한 관심에 또 한번 놀랐었죠 뭐 유명하다는건 알고있었지만 한국의 그림에 보여주는 관심과는 차원이 틀리다는데서 질투도 생겼었습니다.

    도슈사이 샤라쿠의 이야기를 왜 하느냐? 일본의 화가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가 바로 단원 김홍도일거라는 가설이 있더군요. 충격 그리고 웬지모를 긍정... 참고로 전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며 그 가치와 깊이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우리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느니 하늘의 자식들로 우월하다는니 알고보니 저거 다 우리조상이었다는등 그런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를들어 한단고기를 잡서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신봉하지는 않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1794년(간세이<寬政>6년) 5월 어느 날 에도의 극장가에 28점의 오쿠비에(大首繪:얼굴에 테포르메를 가해 그린 그림)를 들고서 홀연히 등장하여 10개월 남짓 140여점의 작품을 제작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가 또 어느 날엔가 자취를 감춰버려서 행적이 묘연해진 화가가 있었다. 혜성처럼 왔다가 사라져버린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그의 생몰년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우키요에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었는지 어디에서 왔었는지 또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로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자료를 파고드는 데는 나름대로 선수인 일본학자들조차도 여지껏 밝혀내지 못하니 그가 사라져 버린 지 200년이 지났건만 우리에게 남겨진건 알다가도 모를 그의 아이러닉한 작품들과 그를 둘러싼 난무한 추측들일뿐이다.

    이영희(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에 의해『또 하나의 샤라쿠』가 토쿄의 하출서방신사에서 발간되었다. 이영희 교수는 그가 바로 조선의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라는 학설을 주장해서 관심을 끌었지만 설득력있고 명쾌한 답변은 나오지 않는게 현실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단원이 1794년에 정조의 신임으로 연풍현감으로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정조의 밀명을 수행하는 한편 토슈사이 샤라쿠란 이름으로 활약했다고 것인데, 실제로 이 기간동안 단원의 국내활동이 알려지지 않아서 샤라쿠가 단원이라는 설에 한몫을 거든 것이다.

    학자들은 이 무렵 조선에서 '증발'한 김홍도의 행적과 일본에 갑자기 등장한 도슈사이라는 화가를 같은 인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초등산수습방첩>이라는 '지펜샤 앗구'의 화첩을 들고 있다.

    당시 도슈사이 샤라쿠는 10개월간 140여편의 초상화를 제작한 뒤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일본화단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샤라쿠가 그린 초상화의 선이 김홍도의 필선과 유사하고, 김홍도의 국내 행적이 묘연했던 시기가 바로 샤라쿠가 일본에 등장했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샤라쿠는 바로 김홍도였다고 국내 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근거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수긍하고픔 생각이 드는건 지금에와서 기억을 더듬어 샤라쿠와 김홍도의 그림과 대조해보니 상당히 유사점들이 많다는 겁니다. "김홍도 본인이 도슈사이 샤라쿠였을까? 아니면 김홍도와 어떤식으로든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들이 생기더군요. 우리나라의 장인이 일본에서는 어떤 분야의 신으로 추앙받는 케이스도 많은걸보면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민족적 우월감이 작용하는걸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다시 김홍도에대한 관심을 가지게되는군요 어찌보면 이런 일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가진다는것도 부끄럽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우리것에 우리의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저의 잡담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휙~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해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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