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crap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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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다시 읽는 서경식 성공회대 연구교수 2008년 인터뷰 전문My Scrapbook 2012. 1. 22. 15:51
[원문] ‘도쿄경제대 복귀’ 서경식 성공회대 연구교수 인터뷰 전문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간, 그는 서울 창전동의 자택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무심히 커피를 따라주며 말했다. “‘시라케(しらけ)’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퇴색하다’ ‘빛이 바래다’는 뜻으로 일본에서 70년대에 유행한 말인데요. 정치에 냉소적인 70년대 학번 세대를 일컫는 말로 쓰였어요. 지금 한국사회을 보면 자꾸 그 말이 떠올라요." 그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한국사회에 환기한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다. 그는 다음 달이면 2년 간의 고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난생 처음 고국 땅에서 ‘생활’해본 그는 지금 ‘솔직한 비관주의자’의 마음이다. 2년 전 그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답답한” 일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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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My Scrapbook 2012. 1. 19. 01:10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밖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여진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늘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의 얼음 위에 앉아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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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My Scrapbook 2011. 12. 22. 15:46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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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My Scrapbook 2011. 11. 3. 14:09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만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 나희덕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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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My Scrapbook 2011. 10. 27. 19:19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