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crap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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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My Scrapbook 2012. 2. 28. 16:09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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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간My Scrapbook 2012. 2. 17. 23:22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휘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박이가 뛰어내려 안기는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生,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 나희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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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My Scrapbook 2012. 2. 11. 08:15
보고싶은 당신, 오늘 아침엔 안개가 끼었네요. 그곳은 어떤지요? 햇살이 드세질수록 안개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만 내 가슴에 그물망처럼 쳐져 있는 당신은,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은 좀체 걷혀지질 않네요. 여전히 사랑하는 당신, 온종일 당신 생각 속에 있다 보니 어느덧 또 하루 해가 저무네요. 세상 살아가는 일이 다 무언가를 보내는 일이라지만 보내고 나서도 보내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네요. 두고두고 소식 알고픈 내 단 하나의 사람. 떠나고 나서 더 또렷한 당신. 혹 지나는 길이 있으면 나랑 커피 한잔 안 할래요? 내 삶이 더 저물기 전에. - 이정하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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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My Scrapbook 2012. 2. 2. 16:00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였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