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crap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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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도회(都會)My Scrapbook 2013. 4. 18. 16:20
먼지투성인 지붕 위로 달이 머리를 쳐들고 서네. 떡잎이 짙어진 거리의 포플라가 실바람에 불려 사람에게 놀란 도적이 손에 쥔 돈을 놓아 버리듯 하늘을 우러러 은(銀)쪽을 던지며 떨고 있다. 풋솜에나 비길 얇은 구름이 달에게로 달에게로 날아만 들어 바다 위에 섰는 듯 보는 눈이 어지럽다. 사람은 온몸에 달빛을 입은 줄도 모르는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예사롭게 지껄인다. 아니다 웃을 때는 그들의 입에 달빛이 있다 달 이야긴가 보다. 아, 하다못해 오늘밤만 등불을 꺼버리자 촌각시같이 방구석에서 추녀 밑에서 달을 보고 얼굴을 붉힌 등불을 보려무나. 거리 뒷간 유리창에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 이상화 [달밤 - 도회(都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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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선생이 소설가 이인성 님께 보낸 1977년 편지My Scrapbook 2013. 4. 14. 10:56
김현 선생의 20주기를 맞아 목포문학관에 김현 전시실이 마련된다기에, 내가 간직하고 있던 유품들을 그리로 보내기 위해 정리하던 중 아주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무려 30여 년 전에 김현 선생이 내게 보낸 편지였다. 오랜 세월이 누렇게 착색된 하얀 ‘도화지’―A4 용지보다 가로 세로가 조금 작은 크기다― 위에 행갈이 한 번 없이 단숨에 씌어진 듯한 그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흘림체(體) 친필 글씨를 들여다볼수록, 내 귓가에는 참으로 살가웠던 선생의 목소리가 어른어른 되살아나서, 당장이라도 전화를 드려 술 한 잔 사주십사 여쭙고 싶다는 욕망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런데, 김현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연 20년이나 되었단 말인가… 김현 선생이 마흔여덟 살에 훌쩍 떠나버린 이 세상에 나는 쉰일곱 살이 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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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얼굴My Scrapbook 2012. 5. 19. 11:25
쌍윳따 1:10 맑고 깨끗한 얼굴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어떤 하늘사람이 한 쪽에 서서 세존의 앞에서 이처럼 시를 읊었다. [하늘사람] "한적한 숲속에서 살면서 고요하고 청정한 수행자는 하루 한 끼만 들면서도 어떻게 얼굴빛이 맑고 깨끗해지랴?" [세존]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